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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민/ 작가
그곳이 어디든 간에 손에 잡히는 것을 장난감 삼아 몇 시간이고 놀던 때가 있었다. 대체로 집에서 의자와 이불로 동굴을 만들거나 안 쓰는 가재도구로 인형 집을 만들며 놀았다. 모든 장난감은 인격을 가지고 있었고 꼬물거리는 입으로 홀로 대사를 주고받으며 인형 세계의 서사를 만들어갔다. 간혹 부모를 따라 부모 지인을 만나러 그들의 집으로 갈 때면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새로운 물건들과 환경 속에 온갖 상상을 펼치며 시간과 장소를 넘나들었다. 고대 세계로 탐험에 나서기도 하고 지구 반대편 나라에도 다녀오며 한국의 어느 과거 시점에 머물기도 했다. 새로운 서사와 상상을 그리는 ‘놀이’는 모든 창작의 시작이었다.
여기, 자신의 놀이를 보여주는 한 사람이 있다. 누군가의 비밀스러운 다락방에 올라가듯 굽이진 계단을 따라 건물 옥상으로 가면 각기 다른 세계가 펼쳐진 세 개의 나무문이 나온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체리 색 문을 열어본다. 그곳에는 두 개의 작은 육면체 기둥과 벽면에 두 개의 구멍, 자영의 <peepject_두 개의 눈구멍X2> 있고 우측에 딸린 또 다른 작은 방에는 출입을 막아놓았으나 망원경을 통해 방안을 살필 수 있는 자영의 <12개의 산 9개의 돌 6리터의 물> 작업이 있다. 두 구멍을 들여다본다. 그곳에는 바깥의 풍경이나 어디서 떨어져나온 듯한 어떤 조각, 그리고 작은 모니터를 통해 자영이 수집한 세상의 모습이 담겨있다. 고개를 꺾어 육면체의 구멍을 위로 올려다보거나 몸을 구부려 바닥과 가까운 육면체의 구멍을 보는, 다소 불편한 자세로 구멍을 들여다보는 행위는, 세상의 그 많은 볼거리 중에 어느 한구석 ‘들여다보기’를 통해 다른 눈높이의 보기를 행하게 된다. 그 구멍을 통해 무언가를 발견하기도 하고 잘 모르는 대상과 세계에 대해 상상하기도 한다. 자영은 이미지가 범람하는 세계에 작은 구멍을 내어 기존 체계 속 익숙해진 시선으로부터 다른 ‘들여다보기’를 만들어낸다. 이 ‘들여다보기’의 놀이에는 불편함이 동반되지만, 그 불편함으로부터 우린 다른 것을 보게 된다.
우측의 작은 방에는 비닐과 어떤 무게 자국이 가득한, 몇 겹의 색이 흩뿌려진 가짜 돌덩어리들이 마른 풀더미와 함께 원을 그리며 놓여있고 그 가운데에는 앙증맞은 장난감 돛단배가 떠다니는 작은 분수가 있다. 무릎 높이 채 닿지 않는 이 작은 연못은 자영이 만든 세계이다. 자신의 주변 것들을 모아 어느 풍경을 만들고 그 놀이에 사람들을 초대한다. 그러나 우리는 앞선 구멍처럼, 그 풍경을 망원경이라는 장치를 통해 살펴보게끔 유도된다. 전체를 빤히 볼 수 있는 상황에서도 앞에 놓인 망원경을 통해 그 세계를 손의 떨림과 함께 흩날리는 시선으로 구석구석 세밀하게 본다. 또 다른 ‘살펴보기’의 행위를 통해 우리는 눈앞 펼쳐진 것을 한층 더 확대해 보며 일상의 눈으로 보지 못한 것을 찾아간다.
자영은 자신의 놀이에는 ‘보든지, 말든지’의 태도가 기저에 있다고 하지만, 두 개의 눈구멍과 망원경을 통해 우리는 작가의 놀이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싶은 호기심과 궁금증이 생긴다. 구멍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망원경을 통해선 무엇이 달리 보일까. 작가는 세상을 불편한 자세에서 들여다보고 장치를 통해 면밀하게 살펴보는 놀이를 하는 듯하다.
2020.08.05.
희민 작성
여기, 자신의 놀이를 보여주는 한 사람이 있다. 누군가의 비밀스러운 다락방에 올라가듯 굽이진 계단을 따라 건물 옥상으로 가면 각기 다른 세계가 펼쳐진 세 개의 나무문이 나온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체리 색 문을 열어본다. 그곳에는 두 개의 작은 육면체 기둥과 벽면에 두 개의 구멍, 자영의 <peepject_두 개의 눈구멍X2> 있고 우측에 딸린 또 다른 작은 방에는 출입을 막아놓았으나 망원경을 통해 방안을 살필 수 있는 자영의 <12개의 산 9개의 돌 6리터의 물> 작업이 있다. 두 구멍을 들여다본다. 그곳에는 바깥의 풍경이나 어디서 떨어져나온 듯한 어떤 조각, 그리고 작은 모니터를 통해 자영이 수집한 세상의 모습이 담겨있다. 고개를 꺾어 육면체의 구멍을 위로 올려다보거나 몸을 구부려 바닥과 가까운 육면체의 구멍을 보는, 다소 불편한 자세로 구멍을 들여다보는 행위는, 세상의 그 많은 볼거리 중에 어느 한구석 ‘들여다보기’를 통해 다른 눈높이의 보기를 행하게 된다. 그 구멍을 통해 무언가를 발견하기도 하고 잘 모르는 대상과 세계에 대해 상상하기도 한다. 자영은 이미지가 범람하는 세계에 작은 구멍을 내어 기존 체계 속 익숙해진 시선으로부터 다른 ‘들여다보기’를 만들어낸다. 이 ‘들여다보기’의 놀이에는 불편함이 동반되지만, 그 불편함으로부터 우린 다른 것을 보게 된다.
우측의 작은 방에는 비닐과 어떤 무게 자국이 가득한, 몇 겹의 색이 흩뿌려진 가짜 돌덩어리들이 마른 풀더미와 함께 원을 그리며 놓여있고 그 가운데에는 앙증맞은 장난감 돛단배가 떠다니는 작은 분수가 있다. 무릎 높이 채 닿지 않는 이 작은 연못은 자영이 만든 세계이다. 자신의 주변 것들을 모아 어느 풍경을 만들고 그 놀이에 사람들을 초대한다. 그러나 우리는 앞선 구멍처럼, 그 풍경을 망원경이라는 장치를 통해 살펴보게끔 유도된다. 전체를 빤히 볼 수 있는 상황에서도 앞에 놓인 망원경을 통해 그 세계를 손의 떨림과 함께 흩날리는 시선으로 구석구석 세밀하게 본다. 또 다른 ‘살펴보기’의 행위를 통해 우리는 눈앞 펼쳐진 것을 한층 더 확대해 보며 일상의 눈으로 보지 못한 것을 찾아간다.
자영은 자신의 놀이에는 ‘보든지, 말든지’의 태도가 기저에 있다고 하지만, 두 개의 눈구멍과 망원경을 통해 우리는 작가의 놀이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싶은 호기심과 궁금증이 생긴다. 구멍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망원경을 통해선 무엇이 달리 보일까. 작가는 세상을 불편한 자세에서 들여다보고 장치를 통해 면밀하게 살펴보는 놀이를 하는 듯하다.
2020.08.05.
희민 작성